열아홉 잔월효성
끝이자 시작 본문
유리. 출신 불명. 요르비안 대륙에서 18살 때 학교를 졸업하고 용병 생활 시작. 37살에 오른팔이 절단된 이후 은퇴. 해변 마을에 정착하여 꼬치 가게 사장이 되기 전까지 방황하며 프리터 생활. 47살, 헌터 시험 합격 후 블랙리스트 헌터로 활동. 호쾌하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강강약강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주변의 평가를 종합하면 성격이 나쁜 건 아닌데 좋지도 않은, 실없는 소리와 거짓말로 가끔 사람을 짜증 나게 만드는 사람.
챠칸 알다르 자야. 아이지엔 대륙, 겨울의 부족 출신. 19살 때 의사가 되었으나 가출 후 떠돌이 생활 시작. 25살에 장님이 된 이후 잠깐의 방황. 이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의사보단 악사로서 생활. 51살, 헌터 시험 합격 후 작곡 헌터로 활동. 세상에 무서운 게 없다는 듯 단순하고 기막히는 성격을 가지고 있고, 주변의 평가를 종합하면 너무나도 자유로워서 붙잡을 수 없는, 대화하고 있자면 말려드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사람.
나란히 두었을 때 연관성이라곤 찾을 수 없는 두 사람(누군가의 말을 빌려, 결이 다른 이상한 아저씨라는 것은 똑같다.)의 이야기는 4년 전 치러진 287번째 헌터 시험에서 시작된다. 그 시작에 관한 이야기는 소설 속 들어가는 글과 같이 매우 진부한 것이므로, 굳이 할 필요는 없겠다. 우연이라면 우연히고 필연이라면 필연인 만남을 시작으로 어느새 서로를 형·동생이라 칭하는 관계가 되었다. 으레 그렇듯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 악착같이 살아남아 자신을 불사신이라 칭하던 자도, 사랑이란 저주로 죽지 못하던 자도 결국 인간이란 틀에 들어가는 유한한 생명을 지닌 존재였기에…….
그곳에선 모든 것을 태초의 모습으로 되돌릴 빛나는 폭음과 말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듯한 불신의 비명이 울렸다. 자신을 검열하며 마지막으로 남은 감정은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움직이지 않는 몸을 채찍질하였으나 곧이어 적막이 찾아왔기에, 불필요한 것이 되어버린다. 절명(絶命)의 소리는 생각보다 공허했다. 조금은 쓸쓸한 맛이 났고,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불안감이 몸속에서 썩어가는 듯한 감각이다. 삼가 아뢰는, 최악의 꿈이라 명명할 수 있겠다.
* * *
마치 추락하듯 몸이 부유(浮遊)하는 느낌과 다르게 정신은 빠르게 기억을 훑으며 부상(浮上)한다. 알다르는 눈을 몇 번이고 깜박였다. 강산이 세 번 바뀌고 한 번 더 바뀌려고 할 때까지 그의 일생의 절반 이상을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서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 보인다는 감각은 정말 생소한 것이었으니, 적응하려는 것과 별개로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풍경을 담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비록 그 풍경에 여름과 겨울이 함께 존재해도 말이다.
무생물에도 감정이 있다면 슬픔을 담고 있을 바람이 뺨을 스쳤다. 붉고 노랗게 타오르는 태양의 그림자는 바다에 물들어 파도를 타고 육지를 잡아 삼킬 듯이 밀려오고 있었다. 하얀 포말은 그 빛을 머금고 산산이 부서지기를 반복했다. 처음으로 보는 바다였기에, 그는 다른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처음으로 눈에 담은 바다의 풍경은 퍽 아름다웠고 평화로웠다. 그 어떤 미사여구를 붙인 활자의 초상과 견줄 것이 못 됐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박거리는 모래사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그것이 불만이라는 듯이 익숙한 겨울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것이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19살.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있던 나이. 그때를 마지막으로 떠나보낸 고향의 설원은 너무나 눈이 부셔서 실명이라도 할 것 같았다. 가장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그 풍경을 보고 있자면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새 발걸음을 돌려 설원으로 향한다. 익숙한 냉기가 몸을 감싸며 창백한 적막에 휩싸인다. 그는 겨울을 사랑했다. 그 겨울이 자신을 난도질하여도, 삶을 어그러트려 찬미할 수 없게 만들어도… 그것을 인정하면 안 될 것만 같아서, 억누르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대로 녹아내려도 좋다고 생각했다.
"여기서도 이상한 생각 하는 거?"라는 말만 듣지 않았다면.
알다르가 무언가를 하기도 전, 그 목소리의 주인은 어느새 다가와 알다르의 어깨를 세게 치고 팔을 두른다. 어깨동무라고 하기엔 조금 과격한 느낌이 있었지만, 그 과격함 또한 유리가 지닌 다정함의 일부였다.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나름 연장자인 그를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앞서 언급된 딱 한 사람뿐이었으므로. 알다르는 그를 노려본다. 선글라스 너머로 시선이 정확하게 맞았다. 본인이 더 놀라 고개를 돌리지만 굳이 벗어나려고 하진 않았다. 편협한 시각에서 알다르가 유리를 힘으로 이길 수 없어 보인다. 실제로도 그러하였으니 이는 편협하다기보단 사실적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유리는 습관처럼 무언가 하려다가 멈칫했다. 알다르는 그의 비어있는 오른쪽 팔을 본다. 자신의 시력이 돌아온 것처럼 그의 팔은 돌아오지 못했나 보다.
"동생은 죽어서도 담배야?"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더라."
"이미 죽었잖아."
"그렇네?"
곱씹어 보면 헛웃음이 나오는 대화다. 죽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상기시킨다. 그를 대신하여 화려한 패턴의 셔츠 가슴 포켓에서 담뱃갑을 꺼내 열어본다. 돛대였으면 부러트려 던져버렸겠지만 아쉽게도 절반 정도 남아있었다. 이대로 던져도 되지 않나? 하지만 던졌다가 목이 졸려 두 번 죽는 건 사양이었다. 알다르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의 입에 담배를 한 개비 물려주고 불도 친절하게 붙여주었다. 그 선의를 "형, 진짜 사람이 갑자기 변해서 죽은 건가 봐."라고 매도당했지만.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면 호탕하게 웃으며 농담이라며 팔에 힘을 주었다 풀어준다.
담배는 향(香)이 될 수 없다. 죽은 사람에게 담배는 사치였다. 그런데도 그 냄새에서 위안 받는다. 두 사람은 말없이 걸어간다. 한 사람은 모래사장을, 한 사람은 눈길을. 이 길의 끝이 있는지 의문이 들 때쯤에 유리는 물고 있던 담배를 뱉었다. 슬리퍼의 밑창으로 비벼 잔불까지 확실하게 끄지만, 꽁초를 줍지는 않는다. 평소라면 잔소리했을 알다르도 그 모습을 힐끔거리다 관심을 거둔다.
그제야 유리는 고개를 휙 돌리고 알다르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행동에 알다르 또한 고개를 돌려 얼굴을 본다. 어깨가 가벼워지면 선글라스에 가려져 있던 눈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반쯤 감은 검은색의 눈동자와 반쯤 감은 붉은색의 눈동자가 마주한다.
"보여?"
"그걸 이제야 물어보니."
"이야, 불공평하네. 내 팔은 그대로인데."
"평소에 착하게 살지 그랬어."
"그거 형이 할 소리는 아니다."
실없는 소리가 오갔지만, 시선은 여전히 마주한 상태였다.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유리가 물었다.
"그 눈으로 직접 본 소감은?"
그러면 알다르는 유리의 얼굴을 한차례 훑어보고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내가 구상한 얼굴보다 더 무섭게 생겼어."
그게 동생에게 할 말이냐며 유리가 어깨로 그를 밀어내듯 툭 친다. 알다르는 힘없이 쓰러졌다. 휘청인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털썩 쓰러진 것이다. "네 기준의 툭은 나한텐 교통사고라는 걸 언제쯤 깨달을 거야?"라며 알다르가 그를 질책하듯 물어보면, 그는 "교통사고가 난 빵을 뭐라고 하는지 알아? 붕어빵이야. 붕~ 어! 빵!"이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어이가 없으니 화도 나지 않았다. 절대 그의 보복이 두려워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연장자로서 눈감아주는 거다. 알다르는 조용히 눈을 털고 일어난다.
"형, 그거 알아?"
"이상한 아저씨 개그 할 거면 주둥이 잡아버릴 거야."
"거참, 죽어서도 내 개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왜, 죽어서 보는 풍경이 생전에 보고 싶었던 풍경이라잖아. 형은 저 설원이 보고 싶었던 거야? 감상 좀 들려줘 봐."
"아이고, 동네 사람들! 동생이 형을 이야기 나오는 자판기로 압니다!"
"여기에 사람이 어딨어?"
알다르는 짜증 난다며 주먹을 쥐고 그의 옆구리를 퍽퍽 쳤지만, 효과는 미미할 뿐이다. 그는 아주 평온한 낮으로 주먹을 맞으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한숨을 내쉰 알다르는 얼얼한 손등을 매만지며 고개를 돌린다. 설원의 끝엔 가파른 절벽으로 이뤄진 산이 빼곡했다. 겨울의 부족의 말을 빌려 자신을 제외한 그 어떠한 것의 침범도 허락하지 않는, 조드의 둥지라는 수식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알다르는 그 둥지의 품 안에서 나고 자랐다. 과분한 사랑을 받기도 했고….
나, 성인식이 끝나고 의사가 되자마자 저길 떠났어. 부모님에게 복수하고 싶었거든. 다시는 저 설경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떠났는데,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 만난 장소도 너희랑 만나게 된 계절도 내가 죽게 된 곳도 결국 나의 영혼이 만들어진 곳이었어.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어버렸지만. 나는 나의 모든 겨울을 사랑했다고 이제야 인정할 수 있게 됐다? 참 웃기지. 여기서 동생이랑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저곳으로 갔을 거야.
고해하듯 말한다. 후련하다는 듯한 낯빛으로 안온한 미소를 지었다. 유리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용히 담배를 피울 뿐이다. 고개를 돌려 알다르의 시선이 머무는 방향을 응시한다. 태어나 살아가며 사람은 각자의 사연이 생긴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그는 제 앞에 무엇이 나타나도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 나가는 사람이다. 좌절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 좌절은 도움닫기와 같은 것으로 취급했다. 남아있는 한쪽 팔로 불확실한 것을 쳐내고 확실한 것을 붙잡았다. 그 행동은 거침없었고 용병으로서 살아남은 자신감과 거만함이 깔려있었다. 유리에겐 웃을 수 없는 추억도 그저 우스운 이야기가 된다.
그런 유리는 알다르가 이해되지 않았으나 이해되지 않은 채로 그 존재를 긍정해 주는 것이다. 희로애락의 감정은 한순간이기에 인생은 느리고 빠르게 흘러간다. 감상이 매듭지어지면 자연스럽게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이렇게 보니 설원과 그가 조금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닮았네. 왜 좋아하는지도 알겠고."라며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말을 꺼냈다. 외관적인 이유도 있으나, 그는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어도 내뱉은 숨은 하얗고 가늘었다. 계절이 바뀌면 녹아 사라지는 눈처럼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발자국을 남겨도 덮여 지워지고, 녹아 사라져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는 모습은 그의 삶과 같았으므로.
"그때 애들이랑 가게에 놀러 왔잖아. 그 앞에 있던 바다가 내 옆에 바다거든. 해변에 쓰레기가 좀 있지만 나쁘지 않지?"
"나쁘지 않기만 하겠어. 되게 예쁘고 반짝거려. 쓰레기야 뭐, 어디를 가나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단다? 오히려 있으니까 동생이랑 닮은 것 같기도."
아까의 회답이다. 여름의 바람은 낯가림이 없다고 말한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고민도 밀려오는 파도에 쓸려가 평온한 나날을 만들고, 차갑지만 따스한 불의 생명력은 발버둥 칠 힘을 준다. 아픔은 여름이 시작되면 재가 되어 사라지고, 내일의 빛이 찾아왔기에 여름을 모르는 사람은 여름이 아름답다고만 말한다. 그것은 여름을 버텨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알다르는 생각한다. 수평선의 고독을, 볼품없는 흉터로 가득한 쓰레기의 산을, 햇볕에 타들어 간 시체에서 생명을 보았는가. 유리를 향한 그의 감상은 그랬다. 어디가 닮았냐고 물어보는 그에게 명쾌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입을 닫는다. 그의 반응이 재미없었는지 유리는 금세 흥미가 떨어진 눈빛으로 담배를 물었다. 숨과 함께 폐에 가득 차는 향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슬슬 무릎이 아플 때가 됐는데 안 아프네. 얼마나 더 걸어가야 해? 설마 네가 그 담배 다 피울 때까지 도착 못하는 거 아니야? 더 이상의 간접흡연은 싫은데."
"우와. 본인은 흡연자 아닌척한다. 심심해?"
"조금."
"그때처럼 목이라도 졸라줄까?"
"너는 진짜 언제의 이야기를. 이게 계속 기어오르지."
"동생이 틀린 말 했수? 그런 주먹으로 백날 때려봤자 하나도 안 아파. 차라리 백문백답이나 하자."
"음…. 그러면 동생. 동생은 그렇게 태어나서 그렇게 살다 죽은 거 후회해?"
"지금 그런 걸 질문이라고. 나나 형이나 도긴개긴이고 뒈지면 다 똑같아. 의미 없다."
아주 찰나의 간극,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뒤엉켰다.
우문현답이다. 어떤 삶을 살아왔든 죽으면 다 똑같은 것을. 자라온 환경이 무슨 상관인가? 꽃이 피면 꽃이 피는 대로, 꽃이 지면 꽃이 지는 대로 그들은 그렇게 살아갔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한탄하기보단 그 자체를 즐기며 행복을 추구하였다. 누군가가 지금까지 걸어온 삶의 궤적이 이리 허무하게 사라져도 괜찮냐는 질문을 한다면 적어도 후회는 없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두 사람의 봄은 끝을 맞이하였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다. 이대로 여름을 건너 가을과 춤추고 겨울을 지새우는 샛길로 빠져 영영 종착점에 도착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애초에 그 종착점은 당사자가 정하는 것이 아니던가? 이것이 소설이었다면 이미 결말을 맞이하여 독자들에겐 곧 잊힐 이야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잊힐지언정 소설 속 주인공들은 영원히 살아간다. 결말의 끝에서도 다음을 기약하고 있으므로. 그러니 두 사람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