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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잔월효성

추천 BGM // Sondre Lerche – Bad Law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전날 야근에 찌들어 새벽에 퇴근하여 3시간 정도 자고 일어난 그런 아침. 커튼 사이로 들어온 햇빛은 적당했고, 언제나처럼 제자리에 물건들이 놓여있어 동선에 방해되는 것 하나 없었다. 아침으로 커피를 내렸고, 베이글을 구웠다. 크림치즈에 블루베리, 꿀까지 올린 완벽한 식사를 끝마치고 정확히 17분 후, 외출할 준비를 끝마친다. 검은색 셔츠에 검은색 쓰리피스 정장. 아, 여기서 평소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평소엔 정장과 동일한 색상의 무지 넥타를 하지만 오늘은 동생에게 선물로 받은 사선 스트라이프 넥타이를 했다. 딱히 심사숙고한 것은 아니다. 가장 위에 걸려있던 것을 골랐을 뿐이다. (애초에 보여줄 사람도 없다...

추천 BGM // キタニタツヤ - 聖者の行進 세계가 무너졌을 때 나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어쩌면 내가 세상의 끝을 목격하리라고는, 적어도 그날 아침 커피를 마시며 배당된 사건 자료를 훑어보는 순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우스갯소리로 한 번쯤은 해봤던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음에도, 나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사무적으로 그 장면을 바라봤다. 수없이 많은 건물이 순식간에 붕괴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두려움이나 경외감보다는 일정이 꼬이지 않기를 바랐다. 손에 쥐어진 서류만이 유일하게 현실감을 제공해 주었고, 도시의 고동이 멎고 사람들의 비명이 바람 속에 흩날려 사라질 때도, 나는 단절된 상태로 현재 사태에 적용될 조항을 무의식적으로 더듬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기이하게..

추천 BGM // David Kushner - Daylight 봄은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계절이었다. 겨울이 남기고 간 차가운 숨결이 세상을 가득 채우는 따스한 햇살에 서서히 녹아내리며 새싹이 돋고 꽃을 피웠다. 그런 봄날, 아직 스무 살이었던 미겔 Z. 당테스는 벤치에 앉아 졸업식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하늘은 맑고 푸르며, 바람은 상쾌했다. 그곳에서 원하는 꿈을 이룬 페이지 도나티의 졸업을 축하해 주기 딱 좋은 날씨였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온 보상 같았다. 페이지 도나티는 미겔보다 4살 많은 소꿉친구이자, 가족과 같은 누이였다.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며 늘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활동적이고 호기심이 많던 페이지는 언제나 모험을 즐겨했고, 모험을..

추천 BGM // Vaundy - HERO 주원복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불과 하루하고 몇 시간 전,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는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능력자가 아닌 이상 아무리 힘을 쏟아도, 아무리 싸워도 막을 수 없었다. 바이러스는 무차별적으로 퍼졌고, 히어로들이라고 해서 그 사태를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주원복은 더 이상 히어로가 아니었다. 히어로들의 계약은 끝났고 이제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장장 20년이다. 20년이나 걸렸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에, 주원복은 제 아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본부에 남아있기로 했다. 그는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편이었다. 정확히는 집중을 방해하는 것들을 싫어했다. 그럼에도 남아있..

추천 BGM // OneRepublic - Good Life 유리. 출신 불명. 요르비안 대륙에서 18살 때 학교를 졸업하고 용병 생활 시작. 37살에 오른팔이 절단된 이후 은퇴. 해변 마을에 정착하여 꼬치 가게 사장이 되기 전까지 방황하며 프리터 생활. 47살, 헌터 시험 합격 후 블랙리스트 헌터로 활동. 호쾌하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강강약강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주변의 평가를 종합하면 성격이 나쁜 건 아닌데 좋지도 않은, 실없는 소리와 거짓말로 가끔 사람을 짜증 나게 만드는 사람. 챠칸 알다르 자야. 아이지엔 대륙, 겨울의 부족 출신. 19살 때 의사가 되었으나 가출 후 떠돌이 생활 시작. 25살에 장님이 된 이후 잠깐의 방황. 이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의사보단 악사로서 생활. 51살, 헌터 ..

추천 BGM // amazarashi - とどめを刺して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겨라는 말이 있다. 넓은 황야를 가로지르는 국도 너머의 산림은 누구의 소유인지는 모르나 철조망이나 안내판 하나 없이 개방되어 있었다. 그저 아름다운 자연의 한 가닥, 흙먼지가 휘날리는 황야 속의 휴식처, 부자들이 탐내고 있는 개발지…. 사람들은 그리 생각했다. 정작 그 산림을 이루는 빼곡한 나무와 식물 사이에 숨겨진 것은 담쟁이덩굴에 뒤덮여져 자연의 일부로 위장한 새하얀 건물이었다. 위성지도에서 지워진 그 건물의 정확한 명칭은 없었으나, 그곳에 출입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저 연구소라 명명(命名)했다. 그리고 그 연구소엔 특이한 연구원이 한 명 있었다. 가장 낮은 등급이자 모든 곳에서 열외로 취급되는 장의사. 하지만 소장과 어..

추천 BGM // King Gnu - SPECIALZ C 대륙에 있는 베게로세 연합국은 한겨울에도 봄과 초여름의 경계에 있었다. 으레 그렇듯 누군가는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아 불만을 토로했으나, 현재 이곳에 머물고 있는 그에게 있어서 베게로세 연합국의 날씨는 매우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자연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곳곳에 사람의 손이 닿았던 흔적이 남아있으나 오랜 시간 관리가 되지 않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 형태는 꽤 볼만했다. 결국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모순적인 생각을 하며 그는 무릎까지 올라오는 수풀을 지팡이로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몇 년만 빨리 왔어도 길이 남아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희미한 달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