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간접적인 아동폭력(모브), 살인, 방화 언급이 있습니다. 읽으실 때 주의 부탁드립니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며 모든 고통은 결국 필연이다.
매미가 허물을 벗는 계절이었다. 그 매미는 고작 14일을 위해 14년을 땅속에서 보낸다. 그러니 때때로 샬럿 고드 보르지아는 사유했다. 축복과 저주, 행운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삶이 뒤틀린 것도 크게 이상할 일은 아니다. 그저 동전이 뒤집힌 것뿐이 아닌가?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는 벌어졌을 일이 아닌가? 행운과 불행, 축복과 저주를 좌지우지하던 이가 그것에 휘둘리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샬럿은 영원히 동전을 뒤집고 또 뒤집기보다 그저 그것을 손에 쥔 채 사라지는 길을 택했다. 누구도 샬럿의 동전에 관심을 가질 수 없는 곳으로……. 여자는 대개 다정한 이였다. 여자를 구성하는 하나의 대전제가 뒤집힌 이후에도 그랬다. 그러니 샬럿 고드 보르지아가 스스로에게 매몰되는 것은…….
이제 다시 동전을 뒤집어 보자. 셋, 둘, 하나.
당신은 유리창 너머를 바라본다. 볕이 따갑다. 소녀는 어느새 여자가 되어 있다. 돌로 지어진 사원은 이끼와 진흙으로 여자를 숨겨 주고 있었다. 찬란한 문명이 떠난 이후에도 한 명의 신관쯤은 지켜 줄 수 있다고 여긴 것일까? 바야흐로 때는 스무 살의 여름. 생명이 만개하는 계절이다. 샬럿은 풀벌레가 그날따라 숨을 죽인 채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이것은 어떤 일의 징조다. 평생을 샤먼으로 살아온 여자야말로 알아차릴 수 있는.
낡고 오래된, 사람에게서부터 잊힌 사원을 떠나 빈민가로 걸음 한 것은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구르기 시작했다. 불길하게도, 까마귀가 울었다. 그 울음소리야말로 비웃음을 닮아있다.
빈민가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았다. 도시로 합류되지 못한 모든 인간은 빈민가로 흘러 들어간다. 이곳이야말로 삶의 종착지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이곳까지 굴러떨어질 수 있었고, 누구도 이곳을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빈민가에서는 절망의 냄새가 났다. 그것은 오랜 체념이 켜켜이 쌓인 이후에서나 풍기는 냄새였다. 그러니 샬럿에게도 익숙했다. 몇 차례씩 곱씹어 가슴속에 쌓아 둔 것에서부터 비슷한 냄새가 났으니까.
살려주세요.
희미한 애원이 샬럿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샬럿은 고개를 돌렸다. 권능을 확장하자 그 끝에 조그만 덩어리가 걸렸다. 이미 사람보다는 덩어리였다. 삶보다 죽음에 가까운 것. 구태여 목소리로 말미암아 판단하자면 소년보다는 소녀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런 판단은 전부 쓸모없어질 것이다. 저것은 삶을 원하지만, 누구보다 죽음에 가까웠다. 샬럿은 직감할 수 있었다. 저 소녀는 빈민가의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거적에 둘둘 말려 내 버려질 것이다. 누구도 소녀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누구도 소녀의 애원을 알지 못하겠지.
그것이 정해진 운명이다. 샬럿은 운명을 읽는 자였다.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았다…….
“……살고 싶은가요?”
그러니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샬럿은 스스로 자문해야만 했다. 그날 왜 그 애원을 지나치지 못했을까? 멈추어 서서 말을 건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희미한 목소리로 아이가 속삭였다. 네, 나는 살고 싶어요. 죽고 싶지 않아요. 생의 기척도 목소리도 희미했으나 삶에 대한 갈망만은 진실된 것이었다. 샬럿이 재차 물었다.
“다른 누군가를 희생해서라도, 살고 싶은가요?”
아이는 답하지 못했다.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살고 싶지 않은 이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죽음을 유예하지 않고 순응하는 이가 존재하겠는가……? 아이의 눈동자가 점차 흐려졌다. 생명이 꺼져 가고 있었다. 아이는 죽어야 했다. 그것이 이 아이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만약 동전이 뒤집힐 수 있다면? 행운과 불행이 동전의 양면인 것처럼 삶과 죽음 또한 동전의 양면이다. 샬럿 고드 보르지아는 불현듯 깨달았다. 동전은 언제나 손 위에 놓여 있었다. 양면에 어떤 이름을 써넣을지 결정하는 것은 오직 샬럿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벌어진 모든 일은 오직 샬럿의 독단이며, 오롯한 샬럿의 책임이다. 예언이 숨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그래요. 제가 예언 하나 하죠.”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은 예언이 아니었다. 그보다 어떤 선언에 가까웠다…….
“당신이 삶을 원했기에…… 당신은 살아날 거예요.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예언으로부터 말미암아.”
그리고 그것은 진실이 된다. 까마귀 우짖는 소리가 점차 커졌다. 전부 환청이었을까?
동전이 뒤집혔다. 죽음이 삶으로, 삶이 죽음으로. 소녀의 삶을 구했으므로 샬럿은 누군가의 삶을 꺼트렸다. 그는 멀리서부터 열기가 끼쳐 오는 것을 느꼈다. 화재가 사람들을 삼키고 있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자각한 것은 그 직후였다. 이것이 다정인가? 이것이 샬럿이 진정으로 원했던 삶이란 말인가……? 아, 그러나 어머니. 사람의 죽음이란 것이 이토록 쉬웠다면,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애쓰고 무엇을 위해 삶을 구가했단 말인가요? 탄식은 새어 나오지 못했다. 죽음이 그토록 샬럿에게 쉬워서, 그게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 탓에 샬럿은 뒷걸음질 쳤다.
그때, 여자는 도망칠 수도 있었다. 소녀가 여자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리했을 터다. 그러나 그 손이…….
그 작고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이…….
아, 그것이야말로 생명의 증거였다. 생을 불어넣은 뺨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샬럿이 부여한 삶이다. 샬럿의 귓가로 희미하게 금이 가는 소리가 울렸다. 샬럿을 가두고 있던 알이다. 바깥으로 나선 어린 여자가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것은 이제 막 껍질을 들어 올렸으므로. 그러나 지금과 똑같은 것은 될 수 없었다. 그러니 그것이 알 따위가 아닌 번데기였는지도 몰랐다. 14년의 유예는 끝났다. 14일을 살아갈지, 140년을 살아갈지 알 게 뭔가? 삶이 이토록 찬란하고 다정할진대. 그리고 여자는 그것을 누구에게나 쥐여줄 수 있었다. 손 위로 손이 겹쳤다. 그가 하사한 삶이다. 소녀는 오직 여자로 인해 살아났다.
“당신이 나를 구했으니…….”
“…….”
“나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바칠게요. 내 삶을 당신이 주었으니, 내 삶을 가져가는 것 또한 당신이 될 거예요…….”
아, 소녀는 사랑스러웠다. 아니, 소녀가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생명이다! 생명이야말로 그토록 사랑스러워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이나 찬란하고, 사람의 욕망만큼이나 추악하고, 그럼에도 죽음보다 값진 것이었다.
샬럿은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소녀를 품에 안았다.
“그렇다면 같이 갈까요.”
“어디로 가게 되나요?”
“어디로든.”
그러니 어리고 병든 자여, 내게 오라. 내가 너희를 위해 기름 부음을 하사하니, 이는 오직 다른 이들이 아닌 너희에게만 내려진 축복이라. 나는 전능하지 않으니 오직 내 품의 이들에게만 다정하리라. 나는 전지하지 않으니 품 바깥의 이들에게서 능히 눈을 돌리리라. 그리하여 오늘 내가 불공평한 신이 되어 오직 너희만을 이롭게 할 것이며…….
내 손을 붙든 모두를 사랑으로 감내하리라.
그것이야말로 불완전한 신이 자신의 신도들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 * *
오늘의 사건사고 안내입니다. 멕시코 남부 오악사카 주의 한 빈민가에서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강한 바람에 불길이 삽시간에 번졌으며 건물 다섯 채가 전소되었습니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불은 약 3시간 만에 진압되었으며 현재 소방당국에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에 있습니다. 또한 오후 5시를 기준으로 두 명의 사망자를 확인하였으며……. (중략)